원문: 한겨레 | | 원문 발행: 2025-10-16
2025 한겨레 지역회복력 평가: 왜 지역 회복력인가


‘한겨레 지역 회복력 평가’를 함께 설계하고 자문한 최영준 연세대 교수(행정학)가 한겨레 지역 회복력 평가의 의미를 해설하는 글을 보내왔다. 그는 인구감소·기후위기·불평등의 시대에 지역 회복력을 핵심 대안으로 제시하며, 중앙집중식 성장에서 벗어난 자치와 혁신의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학생이었던 1990년대 초중반, 누군가가 그랬다. 21세기는 다양한 삶과 가치가 공존하고, 집단보다 개인이 존중받는 그런 시대가 될 것이라고. 그 이후 1990년대 초 1만 달러 남짓이던 1인당 국민소득은 2020년대에 들어 4만 달러에 육박하게 되었고,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를 자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다양한 삶이 존재하기보다는 학생과 청년, 중장년까지 하나의 선 위에서 경쟁하고 있다. 네 배나 더 부유해졌지만, 뒤처질지 모르는 불안 때문에 내 옆에 쓰러진 이들을 볼 여력이 없는 우리들이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출산율 최저, 그리고 행복지수는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이다.
이러한 성장의 역설에 대한 원인과 결과 모두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의 비대칭적 발전에서 발견된다. 수도권은 고속 성장을 이끄는 엔진이었고, 그 엔진 속으로 사람들은 더 나은 일자리, 교육, 주거를 찾아 끊임없이 빨려 들어갔다. 반면 비수도권은 인구, 일자리, 서비스가 동시에 빠져나가며 ‘살도, 근육도 사라진’ 공동화 현상에 시달린다. 중심부는 더욱 불평등해지고, 경쟁은 심해졌다. 결국 서울은 출산율이 제일 낮은 곳이 되었다.
여기에 세 가지 거대한 바람마저 불어온다. 빠른 속도의 고령화와 인구감소로 대표되는 인구위기, 극단적 자연재해를 동반하는 기후위기, 중심과 주변부의 불평등을 강화시킬 디지털화가 바로 그것이다. 공존이냐 공멸이냐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지역 회복력(resilience)의 필요성을 논한다. 그것은 지역이 우리와 사회의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가능성을 회복할 수 있는 핵심 공간이기 때문이다.
회복력은 단순한 복원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위험을 경감시키고, 변화에 적응하며, 기회를 창출하여, 더 나은 방향으로 전환해 나가는 역량이다. 돌봄과 디지털 기술을 통해 고령화의 위기를 넘고, 증가하는 빈 공간을 사회혁신과 신재생에너지로 채우고, 인구는 줄었지만 끈끈한 관계로 엮인 지역의 모습이 바로 회복력의 좋은 예이다.
지역 회복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우리는 지금까지와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 중앙화, 시장화, 그리고 경제혁신이 ‘성장중독’ 시기의 핵심전략이었다면, 지금은 분권화, 공공화, 그리고 사회혁신이다. 지방자치단체와 일선공무원의 역량을 키우고 재량을 불어넣어야 한다. 공공화는 ‘관주도’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 지역을 살아가는 주민들의 북적거림이 핵심이다. 개방된 공공의 공간에 주민공동체, 비영리조직, 사회적 경제조직이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고, 지역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관은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야 한다.
이미 곳곳에서 이러한 실험들이 시작되고, 확산되고 있다. 변화를 온몸으로 체감하며 위기를 헤쳐가는 시민들이 중심이 되는 실험들이다. 외로움과 양극화의 시대에 다양한 형태의 연대와 협력은 작은 불씨와 같은 귀한 자산이다. 지역이 단지 중앙의 정책을 수동적으로 받는 공간이 아니라, 실험하고 대안을 생산하는 ‘실천의 공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콤팩트하고 끈끈한 지역이 되기 위해서는 빈집, 교통, 돌봄 등 영역에서 지자체가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지자체는 주민과 함께 계획하고 실행하는 조정자이자 촉진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중앙에서 법제도적 조치를 해 주어야 한다. 시민사회는 새로운 사회혁신을 통해 지역 회복력을 주도하는 주체로 기능해야 한다. 이 세 축의 협력은 지역 회복력의 기반이 될 것이다.
이와 함께 지역 회복력의 지표가 필요하다. 지표는 얼마나 상황이 개선되고 있는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더 좋은 사례를 통해서 서로 학습하게 하는 효과를 가진다. 변화를 넘어 전환을 시키기 위해서는 이정표가 필요하고, 그 이정표를 지표가 제시해주는 것이다.
지역의 지속가능성과 위기 대응 능력을 평가하는 ‘한겨레 지역 회복력 평가’가 지난 7월 발표됐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은 환경·경제·사회 등 3대 영역과 10개 부문, 38개 세부지표를 바탕으로 전국 226개 지자체의 회복력을 종합적으로 분석했다. 경제성장이나 인프라 중심의 기존 지자체 평가와 달리, 지역의 지속가능성과 주민자치 등 지역 공동체와의 민관 협력에 초점을 맞춰 지역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성장을 넘어 우리가 직면한 삶의 질, 인간의 존엄,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새로운 답을 찾기를 기대한다.

최영준 연세대 교수(행정학)·한겨레 지역 회복력 평가 전문위원